정녕 생명 길을 알고, 가고자 하는가?
2020.09.12 14:27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영어로 용서란 말이 ‘forgiveness’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용서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고(for giving)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으로도 진정으로 용서했는 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용서한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관심을 갖고 자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은 상태라면 상대방이 실수하고 잘 못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되고 나아가 고소한 마음까지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여전히 사망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님은 우리가 죄인인 상태였을 바로 그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주님을 진정 닮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의인이 되었을 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상태일 때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힘쓴다. 그러다 손해 보고 피해를 당할 줄 알면서도 말이다. 주님이 우리가 죄인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하시다가 생명까지도 희생하게 되신 것처럼.
스데반이 목숨을 잃을 때 주님은 하늘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셨다(행7:55). 그의 희생과 충성에 최고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스데반이 간 길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망 길이었지만 실상은 최고의 생명 길이었다. 정녕 나도 그런 생명 길을 가고자 하는가?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51 | 아벨은 왜 양을 쳤을까? | 편헌범 | 2020.07.25 | 116 |
350 | 사람이 성내는 것 | 편헌범 | 2017.02.12 | 115 |
349 | 감사가 넘치게 하는 비결 | 편헌범 | 2015.11.08 | 115 |
348 | 회개를 잊어버려 가는 시대 | 편헌범 | 2018.06.10 | 113 |
347 | '완전한 지혜'를 가졌는가? | 편헌범 | 2018.02.04 | 113 |
346 | 나는 어떤 벽돌인가? | 편헌범 | 2015.10.04 | 113 |
345 | 다윗의 자손과 뿌리의 구별 | 편헌범 | 2020.10.03 | 112 |
344 | '너의 의'가 무엇인가? | 편헌범 | 2018.07.29 | 112 |
343 | 두 종류의 근심 | 편헌범 | 2017.06.18 | 112 |
342 |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편헌범 | 2019.01.06 | 111 |
341 | 17세의 요셉으로서는 | 편헌범 | 2018.09.16 | 111 |
340 | 니골라당의 논리 | 편헌범 | 2016.09.04 | 111 |
339 | 불신자보다 더 악한 신자(/) | 편헌범 | 2023.07.15 | 110 |
338 | 정말로 자다가 깰 때 | 편헌범 | 2018.08.05 | 110 |
337 | 마귀가 솔로몬을 넘어뜨린 전략 | 편헌범 | 2017.07.23 | 110 |
336 | 왜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냈나? | 편헌범 | 2020.11.01 | 109 |
335 | 장성한 신앙인의 표 | 편헌범 | 2018.05.13 | 109 |
334 | 자기열심과 그 한계 | 편헌범 | 2017.08.13 | 109 |
333 | 헌신은 기쁨이다! | 편헌범 | 2016.10.23 | 109 |
332 | 헌신은 성도의 본분입니다. | 편헌범 | 2016.09.11 | 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