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딛1:16).

 

    주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둘씩 짝지워서 이스라엘의 여러 마을들로 파송한 적이 있으셨다. 이 때 주님은 그 파송받은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인정하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도 그들을 천사들 앞에서 인정해 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마10:32).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인정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보통 영접기도를 하도록 인도한다. 이 영접기도는 자기 입술로 예수를 주와 구주로 고백하게 이끌어 주는 기도를 말한다. 이렇게 주를 영접한 성도들은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 그 성장 과정이란 간단히 말해 입으로 고백한 신앙을 자기 삶으로 소화해서 고백하는 것이다.

 

    만약에 입으로 시인하는 신앙의 초보에까지만 이르고 삶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수준으로까지는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런 성도를 주님은 어떻게 봐주실까? 입술만으로라도 인정했으니 다행으로 여기시고 기꺼이 받아주실까, 아니면 모른다고 외면하실까? 주님이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디도서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바울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성도들을 일컬어서 ‘가증한 자’라고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입술로도 부인하고, 행위로도 부인하는 사람을 가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냥 불신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증한 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신자들이므로 우리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