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고백의 무게
2026.03.22 20:00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능히 이긴다고 분명하게 증거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고백하는 내용이기에, 성도들은 기본적으로 다 이 믿음 정도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성도들 모두가 이 죄악 세상을 힘들지 않게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성도들의 현실이다. 그러면 요한 사도의 증거가 잘못된 것인가? 성경은 정확무오하므로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뿐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이 단순히 지식수준의 차원인지,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신앙의 차원인지 이 부분을 점검해 보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속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먼저 거기에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리고 사람이시지만 그분이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 절대자라는 고백이다. 바리새인들은 이 고백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럴 만큼 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향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여겨진 사안이다.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것이 초대교회 당시에는 생사(生死)를 가름하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이런 조건하에서의 고백이라면 그 믿음은 넉넉히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고백이라면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내 신앙 고백의 무게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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