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와 마리아가 없었다면?
2025.11.02 15: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0-41)
베다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벧’(בית)과 ‘다니’(עני)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벧은 집이라는 뜻이고, 다니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베다니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는 베다니라는 지역이 두 군데가 나온다. 한 군데는 여리고 동편의 요단강 지역으로, 예수께서 물 침례를 받으신 장소다(요1:28).
그리고 또 한 곳은 감람산 동편에서 가까운 베다니 동네이다. 이곳에는 나병환자 시몬이나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가 살던 마을로써 예수께서 자주 이곳에 머무셨다(마21:17). 여기에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예수께서 다시 살려내셨다. 이 일로 인해서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효과가 나타났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려 내실 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을 사용하셨음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한다. 무덤 입구의 돌을 옮겨 놓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그들은 처음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나타나게 된 놀라운 이적이었다. 만약에 두 자매의 순종하는 신앙이 없었다면 나사로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신앙생활에서 넘어지고 넘어질 수 있다. 이 때에 마르다와 마리아 같은 믿음의 형제가 있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이웃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일찍이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4:10)고 솔로몬이 증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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