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탄식

2022.02.19 15:49

편헌범 조회 수:19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5:2~3)

 

    주의 은혜 받은 자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는다. 여기서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죄의 값은 분명히 사망이요, 그것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심판에서 건짐받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무한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불 못 심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구원의 전부는 아니다. 성경은 구원을 받되 벌거벗은 구원도 있고, 흰옷을 입고 영화롭게 받는 구원도 있다고 밝히 가르쳐주고 있다. 바울이 탄식하는 이유도 영원한 불 못 심판을 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영화로운 구원을 얻고자 함 때문이었다. 사실 불 못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서 탄식까지 할 필요는 없다.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흰옷을 입는 구원을 받으려면 탄식함이 필요하다. 이 일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죄를 이겨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 체험적으로 알겠지만 죄를 이기고 물리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죄가 끈질기게 사람을 유혹하고 따라잡는다. 가인도 자기 마음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를 뿌리치지 못해서 결국 아우를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되어 있다. 둘 다 살릴 수 있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저함 없이 날마다 자신을 죽인다고 고백하였다(고전15:31). 이런 일을 어찌 탄식함이 없이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