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 신이 주는 자유(?)
2024.12.01 19:22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호11:1-2)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왕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서 그들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의 말에 더더욱 귀를 닫고 점점 더 세상으로 우상에게로 나아갔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식의 말씀들이 그들에게는 번폐스럽게 여겨졌다. 반면에 바알 신은 아무 것도 요구하는 게 없지 않은가! 바알은 1년에 한 번 찾아가도 아무 말이 없고, 다른 신들을 섬겨도 뭐라 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만큼 물질을 드려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모든 게 완전 자유다.
그런데 이런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바알 신이 주는 자유는 방종케 하는 자유요, 멸망케 만드는 가짜 자유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말씀은 죄를 이기고 생명을 얻게 하는 능력이요, 우리 영혼에 참 자유를 얻게 해 주는 지혜이다. 그럼에도 주의 계명들이 불편하고 억압으로 느껴진다면, 그만큼 자기 영혼이 죄악에 묶여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억압은 말씀이 원인이 아니라 말씀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의 부족함, 무력함이 억압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바울 사도도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된다고 증거햐였다. 이것도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여부를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죄악에 얽매여있는 상태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죄악의 속박에서 풀려나는 만큼 주의 계명을 순종하기가 수월하고 편안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계명에 순종하는 자유가 임하는 것이지 바알 신이 주는 것 같은 방임의 자유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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