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과 쭉정이를 구분짓는 요인

2021.08.07 14:38

편헌범 조회 수:84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곡식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먼저 줄기에서 이삭이 패어나고 그 다음에 이삭이 여물어 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 이삭의 알갱이(container)들의 숫자는 이삭이 나올 때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알갱이들 중에서 잘 여물게 되면 알곡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속이 빈 알갱이 곧 쭉정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이삭 안에 알곡과 쭉정이가 같이 존재한다. 이것은 쭉정이가 교회 밖의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 이미 이삭에 매달려 있는 상태이므로 은혜 안에 모두 들어와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 상태에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잘 받아먹게 되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된다(벧전1:9). {여기서 영혼은 정확히 혼(soul)을 말한다}.

 

    시람들이 은혜받고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이 알곡이 될지 쭉정이가 될지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 평소에는 분별이 잘 되지 않지만 환란 당할 때에 특히 잘 분별이 된다. 알곡으로 여무는 성도는 환란이 닥치면 닥칠수록 더욱 무릎 꿇고 기도한다. 모세를 보라. 어려움이 닥치는 순간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의 인도를 구하지 않는가!

 

    반면에 쭉정이로 변하는 성도는 어려운 때에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불평을 일삼다가 결국 쭉정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알곡과 쭉정이의 구분은 은혜가 아니라 행위의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깊이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