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영어로 용서란 말이 ‘forgiveness’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용서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고(for giving)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으로도 진정으로 용서했는 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용서한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관심을 갖고 자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은 상태라면 상대방이 실수하고 잘 못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되고 나아가 고소한 마음까지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여전히 사망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님은 우리가 죄인인 상태였을 바로 그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주님을 진정 닮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의인이 되었을 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상태일 때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힘쓴다. 그러다 손해 보고 피해를 당할 줄 알면서도 말이다. 주님이 우리가 죄인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하시다가 생명까지도 희생하게 되신 것처럼.

 

    스데반이 목숨을 잃을 때 주님은 하늘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셨다(행7:55). 그의 희생과 충성에 최고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스데반이 간 길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망 길이었지만 실상은 최고의 생명 길이었다. 정녕 나도 그런 생명 길을 가고자 하는가?